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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노래 Odysseia»

참여작가 ㅣ 김지용, 안부, 최수인


별관
2022.12.22-2023.1.29

항해의 길목에서

 

“저는 제 삶을, 특별한 게 틀림없는 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런데 백지 앞에만 앉으면 갑자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건 분명히 기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서 아시는 어떤 지식을 제가 모르는 게 분명해요. 선생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을 쓰셨잖아요…” 1)

   

밀란 쿤데라가 『웃음과 망각의 책』 에서 언급하는 『오디세이아』2) 와 『율리시스』의 관계는 책의 주제 전체를 관통한다. 그에 따르면 소설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변주하여 그 외부 환경과 조건을 내면의 이야기로 포섭한다. 고전을 모티브로 한 현대 소설의 구조를 변주곡과 같은 구조로 파악한 것이다. 모든 “모험의 부재” 속에서 바깥의 경험은 긴밀한 것들로 탈바꿈한다. 오디세우스의 “섬들, 바다, 우리를 유혹하는 세이렌들, 우리를 부르는 이타카 섬”은 오로지 “우리 내적 존재의 목소리들”을 통해 묘사된다.3) 동시대 회화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 또한 종종 이러한 변주를 취한다. 회화 속 내면화된 풍경과 의인화된 사물, 인물을 통한 발화는 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한편 쿤데라는 ‘나는 -를 상상한다’라는 주술을 활용해 인물의 생에 개입한다. 전지적 시점으로 전개되던 이야기에 불쑥 자신을 화자로 등장시킴으로써, 그 흐름에 간섭하는 것이다. 이는 책에서 반복하여 쓰이는 서술 방식으로, 소설의 스토리로부터 거리를 두게 함과 동시에 작가의 존재를 인식케 한다. 나는 이 전시가 이타카 섬으로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고 상상한다. 김지용, 안부, 최수인은 이전 작업에서 벗어난, 혹은 그로부터 나아가는 돌파구를 탐구하며 먼 길을 떠난다. 이들은 종이와 캔버스 위에서 길을 잃고 머뭇거리다가도 저마다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난 앞에서 노를 저어 나가는 형식은 서로 다르다. 각자가 상상하는 이타카의 모습도 다를 터이다. 전시 «오디세우스의 노래(Odysseia)»는 이 길목에서 겪는 난항과 성취 모두를 포괄한다.

 

최수인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속 드러내지 못하는 태도와 드러나는 감정을 담는다. 감정은 늘 타인과의 마찰에서 비롯된다. 언뜻 조화롭게 보이지만 인위적인 풍경에는 감정이 그러하듯 갖가지 모순이 자리한다. 노란색 하늘과 파란색 산, 분절된 파도와 그림자에는 감추려고 해도 떠오르는 것들이 내재해 있다. 유화를 다뤄오던 최수인은 이번 전시에서 건식재료를 활용한 드로잉 작업을 처음 선보이는데, 흑백과 파스텔 톤을 오가는 평면에는 여전히 메마르지 않는 물결이 흐른다. 감정은 산처럼 솟아오르다가도 파도처럼 들썩이는 풍경 속에 뛰어든다. 그러나 자연물로 대변되는 감정은 언제나처럼 그곳에 남아있지 않다. 최수인은 순간에 주어지는 감정을 이미지의 잔상으로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그릴 뿐이다.

 

안부는 현실의 풍경 속 사물을 의인화한다. 최수인이 내면의 것을 밖으로 꺼내어 풍경화했다면, 그는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을 도리어 내면으로 끌어당긴다. 그가 닿고자 하는 풍경에는 항상 정처 없는 사물이 있다. 목동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한강 공원과 버려진 가구가 등장하는 화면에는 잃었던 길을 되찾아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때에, 비로소 갈 곳 잃은 사물은 제자리를 찾는다. 사진에서 회화로, 인화지에서 캔버스로 우회하는 안부는 익숙한 것에서 거듭 낯선 것을 발견한다. 낯섦은 여러 번 붓으로 매만진 끝에 사물 위를 덮는 마티에르(matière)로 나타나고, 이를 새로운 참조점으로 삼는다. 촘촘한 뗏목 위에 위태로운 두께를 가진 사물의 얼굴이 천천히 표류한다.

 

사적인 감정과 보편적인 사물을 가로지르던 풍경은 김지용의 드로잉 위에서 하나의 레이어로 합쳐지고 어긋난다. 그는 인물과 배경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며 경계에 서기 위한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진에서 그림, 다시 사진 콜라주에서 드로잉으로 오가는 작업의 향방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걷는다. 이때 갈림길에서 택한 답은 인물과 배경 뿐 아니라 평면과 입체 사이의 초점을 흐린다. 시선이 가는 곳에 쌓인 밀도는 다시금 파편화된 이미지를 모으고 빈틈을 채운다. 나는 김지용의 그림이 계속해서 옆으로 비껴가는 모양을 상상한다. 같은 사진을 수없이 바라보고 그리고 오려내면서도 매번 새로운 눈으로 변주하는, 현재 발 딛은 곳과 닿고자 하는 곳의 시차에도 결국엔 가고야 마는 회화적 태도를 본다.

 

 

최수인과 안부, 김지용은 의미를 소실하는 풍경을 한 손에 쥐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 이들이 세이렌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나 이타카로 향하는 모험에는 끝없는 변주의 형식이 있다.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노래(Odysseia)》에서 선보이는 작업이 그 끝에 자리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긴 호흡으로 가져갈 항해의 기억은 끝에서 기다릴 토양을 노래한다.


오디세우스의 노래_포스터.JPG

1)  밀란 쿤데라, 백선희 역, 『웃음과 망각의 책』, 민음사, 2011, 174쪽.

2)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모험을 다룬다. 그는 고향 이타카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겪는다.

3)  앞의 책,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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