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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밤이 고요한 때

모정후 개인전 «표류»
쉬프트
2020.11.22-11.28


✴︎

 

  불행과 행복에도 주기가 있다면 불행은 밤으로, 행복은 아침으로 비유되곤 한다. 어두운 밤은 ‘헤쳐나가야’할 대상이자 밝은 아침을 위해 ‘물러가는’ 시간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모정후에게 밤과 어둠은 일종의 견고한 방공호이다. 모정후의 캔버스와 그가 오랫동안 협업해온 실버클럽의 음악 속에서 어둠은 확장된 동공을 마주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장소인 것이다.

 

  전시장에 놓인 네 개의 정방형 이미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실버클럽의 앨범아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림은 자연스럽게 동명의 곡과 짝을 이룬다. 그러나 음악이 완성된 후 커버를 제작하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두 작업은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며 나란히 진행되어왔다. 전시는 공명하는 두 매체를 화이트 큐브 안에 새롭게 조율하며, 서로 다른 감각이 공유하는 문법을 만들어낸다.

 

  둘의 이야기는 느린 주기로 자신의 궤도를 공전하는 행성에서 시작된다. 멀리서 보아 아름답기만 한 행성의 표면에는 자주 크고 작은 운석이 떨어지고 모래폭풍이 일었다(<표류>). 그 가운데 정처 없이 방황하던 둘은 가파른 언덕 위에 오른 뒤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 다다르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남겨진 노래>에서 보이는 위태로운 작업실 풍경은 매일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애써 외면해야 했던 불안을 암시한다. 이내 하나의 노래와 한 점의 그림이 완성되지만,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맞닥뜨린 사람과 사건은 또 다른 표류를 초래한다. <In the Party>는 <표류>의 연장선에 위치하면서도 반전된 분위기로 거대한 소용돌이와 균열을 보여준다.

 

  이처럼 행성-작업실-파티와 같이 동떨어진 장소를 연결 짓는 이들의 여정은 한 곳에 안착하기를 마다하고 견뎌온 시간을 증명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다가오는 어둠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Our Night>는 그들의 밤을 환영하는 진정한 파티인 것이다. 여기서 재해석된 실버클럽의 음악은 지난한 과정을 1분가량의 시간으로 응축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모정후는 각각의 시간에서 건져낸 작은 조각들, 이를테면 <표류>의 화면 왼편에 내려오는 한 줄기의 빛을 포착하여 평면의 회화에 담아냈다. 두텁게 얹어진 물감과 잘게 남은 붓 자국은 음악 못지않은 시간의 축적을 또렷이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곡의 제목은 긴 문장의 전시 제목으로, 곡은 사운드와 독백으로, 작은 이미지였던 앨범커버는 커다란 캔버스로 자리를 이동한다. 이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과 음악을 전시장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리바꿈이다. 이때 음악과 그림, 즉 청각과 시각을 오가는 끊임없는 전환은 다시 그 시간에 속했던 공기의 무게와 온도, 피부의 떨림, 끈적임과 부드러움 같은 공감각의 형태로 우리에게 와닿는다. 비로소 모든 시야를 가리던 “빛은 끝”나고, “이제는 밤이 고요”한 것이다.1)

1) 실버클럽, "Our Night"의 가사 中 

모정후개인전_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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