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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의 그림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박준형 개인전 «빈칸의 여행 Journey of Blank»
DDF
2021.10.2-11.10


 

 

  어떤 하루가 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스케줄을 정리하고, 정해진 과업을 차례차례 달성한 뒤 충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드는 하루다. 건강한 식사와 적당한 노동, 적당한 여가와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이런 하루를 지속할 텐데. 우리는 때때로 기쁘고 자주 슬프거나 아파서 매일 다른 몸과 마음의 자세로 어떤 날을 맞이한다. 박준형은 이렇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연일 새로운 하루를 축으로 매시간의 기억과 기록을 그려왔다. <타임라인 드로잉(Timeline Drawings)>은 그가 보낸 일상을 일종의 ‘시간지도’와 같은 형태로 그려낸 작업이다. 첫 개인전 《빈칸의 여행(Journey of Blank)》은 2020년 12월 27일부터 올해 4월 10일까지 그린 84일, 84개의 드로잉을 짧고 길게 이어붙인 20점의 타임라인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그리고 쓰는 일이 그렇겠지만, 박준형의 <타임라인 드로잉>에는 특히나 왕도가 없다. 여기서 왕도가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무형의 시간을 표상해야 하는 그림의 형식에서, 모든 일과를 낱낱이 상연해야 하는 그림의 내용에서 그렇다. 허울 좋은 장막을 걷어내고 온전한 하루를 재연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종일 유튜브를 시청하며 게으르게 보낸 날까지 그대로 그려내고야 마는 박준형의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난다. 이러한 사정으로 박준형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시간을 두 번 견뎌내게 된다. 첫 번째는 실제로 통과하는 매일의 시간을, 두 번째는 이를 글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옮겨내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따라서 머뭇거리다가도 속도를 붙여 쌓아가는 타임라인 위에는 복수의 시간이 포개진다. 소재가 되는 과거의 시간과 평행한 곳에서, 혹은 그 연장선에서 다른 축의 시간이 뒤얽힌다. 내가 좀 더 주목하는 것은 그가 두 번째로 겪어야 하는 시간이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복기하고 지난 감정을 곰곰이 돌아보는 시간들. 머릿속으로는 지나온 것들을 회고하면서, 동시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그림에 쏟는 박준형을 그려본다. 그때와 지금을 왕복하며 연필과 붓을 움직이는 느린 몸짓을 생각한다. 고요한 호흡으로 더듬어진 시간은 2차원 평면의 종이 위에 특정한 형태의 점·선·면으로, 다양한 농도와 색으로 깃든다.

  이처럼 박준형의 드로잉은 현상으로서의 시간과 달리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이란 이런저런 방향으로 진동하는 것임을 새삼스레 보여준다. 정해진 시간의 면적을 가뿐히 가로지르는 선처럼, 매번 새롭게 감각되는 시간은 앞으로만 돌진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간 과거가 현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하고, 현재의 시점이 지난 과거를 재구성하기도 하며 서로의 층을 넘나든다. 그렇다면 박준형이 그리는 대상은 단순한 시간이라기보다 그가 감각하고 경험한 것 아래로 ‘지나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동결된 명사의 시간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동사의 시간이다. 그림 왼편에 숫자와 시계로 표현된 명사의 시간은 하나의 표지에 불과하다. 그의 시각적 문법은 괄호 안의 명사를 뒤로한 채, 만나고, 헤어지고, 느끼고, 감각하는 구체적인 동사의 모양으로 일구어진다.

  타임라인 드로잉에는 또 다른 표지도 있다. 추상적인 형태 사이에 문득 등장하는, 어디선가 많이 본 도형들이다. 넷플릭스나 구글의 로고, 위치와 이동 경로를 나타내는 지도 위의 기호, 지하철 노선도 따위의 것이다. 어째서 동사로 가득하던 화면 위에 돌연 명사가 호명되었을까? 박준형은 개개인을 이루는 내밀한 요소들과 긴밀히 엮여있는 지지체로서 이 명사들을 불러온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체득되는 속성의 명사이다. 이때 타임라인 드로잉은 따로 떨어진 작가의 삶뿐 아니라 개인의 오늘을 지탱하는 약속된 시각언어를 포괄한다.

  박준형이 기록하는 시간은 저마다의 질감으로 다듬어지기도 한다. 건식 재료의 성긴 입자로 표현되는 거친 질감, 아크릴이나 수채 물감의 균일한 농도로 채색되는 매끄러운 질감뿐 아니라, 미디움과 섞여 불규칙한 두께의 요철을 지니는 것까지 무궁무진하다. 작은 점과 얇은 선으로 흩어졌다가도 동그라미로, 네모로 응집되는 다양한 촉감의 시간은 비로소 손끝에 닿는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박준형은 자신이 경유해온 시간을 다시금 눈에 담고 손으로 매만진다. 목격자로서 마주하는 삶의 낱낱은 그 속에서 변해온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깨닫게 한다. 생활의 크고 작은 변화를 목격하는 한편, 숱한 변화에도 줄곧 자신의 옆에 있던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달라지는 것과 지속되는 것들의 마찰은 오히려 서로를 감싸고 보완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가지 않거나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시간 모두 수평의 선 위에 놓인다. 그리고 현재에 도착해 있는 한 사람을 천천히 부연해나간다. 서로를 촘촘히 엮어내는 삶과 그림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은 사람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고, 더 사랑하고 싶다면 더 부지런해야 한다던 박준형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박준형을 부지런히 만드는 그림과 더 사랑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리는 박준형을 생각한다. 그는 여러 번의 우회를 통해, 무수한 하루를 추적하고 앞으로 나아갈 근육을 단련한다.

  글의 제목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수십 년간 이어온 ‘달리기’에 대해 쓴 에세이이자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에서 빌려왔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듯, 느슨하지만 정직한 페이스와 호흡으로 작업을 지속해온 박준형과 박준형의 그림을 보며 늘 떠올렸던 책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하루키 역시 책의 제목을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집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제목을 빌린 하루키의 에세이 제목을 재차 빌려왔다. 우연이지만 박준형의 그림은 하루키가 말하는 달리기, 레이먼드 카버가 말하는 사랑 모두와 닮아있다. 또는 그들이 쓰는 이야기와 닮았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이야기들이다.

  박준형은 타임라인 드로잉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 이 시리즈를 그만 그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타임라인을 그리는 과정은 타임라인을 그만 그리는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라고도 말했다. 마지막 장에는 어떤 날짜가 적힐지 아직 알 수 없으나, 박준형의 삶은 또 다른 모양으로 이어지고 기록되고 그려질 테다. 결승선까지의 길목이 얼마나 고될지 앎에도 숨 가쁘도록 이어지는 달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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