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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임다울ㆍ배민진 2인전 «평행» 기획
한국예술종합학교 복도갤러리
2019.05.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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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전시 포스터.png

우리는 모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오고 가는 장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사물과 사물 가운데 잔존 한다. 또한 의도하지 않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켜켜이 쌓여 서로의 영역에 스민다. 인위적으로 나뉜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흔적은, 물성을 지닌 무엇보다 자유롭다. 그렇다면 그 주체로서 얽힌 사람과 사건, 이야기들은 어떻게 만나고 스러질까.

«평행»은 전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주체의 흔적을 내포하며, '보이지 않는 유대'를 이끈다. 곳곳에 놓인 사물은 창작자, 수행자, 관객으로 이어지는 개입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모해 간다. 그들 사이의 간극은 각자가 남긴 '직선'의 궤적으로 메꿔지고, 익명의 직선들은 무언의 접점을 맺는다. 이 지점을 포착하고자 하는 배민진, 임다울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느슨한 공존을 이어간다.

배민진은 점멸하는 유대의 순간을 깜빡이는 전등으로 포착한다. 여기서 개입자의 '신체'라는 변수는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각기 다른 전등의 값을 도출해낸다. '사람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존재하는 신체, 그리고 그와 무관한 사물이 우연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창작자에 의해 선택된 사물은 개입자로 하여금 비로소 기능을 지닌다.

이와 동등한 출발점에서 또 다른 평행선을 구축하는 임다울은, 자신의 신체와 조각을 이용해 전시 공간에 개입한다. 본래의 쓰임과 목적을 떠난 사물은 창작자의 손에서 조각이 되었다가, 다시 환경미화 공무원의 휴게 공간을 위한 기물이 되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서로의 흔적에 대응하며 무해한 침범을 지속한다. 곧 최초의 형태는 이지러지고, 공간은 익명의 주체 사이에 '얽힘'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작업명 ‘백야’는 그 자체를 명명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상태를 지칭한다.

전시에서 이루어지는 서사의 시작과 끝, 각각의 개체가 변모하는 순간을 모두 목도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건 이후 공간을 점유했던 흔적과 유대는 전시가 끝난 뒤 각자의 영역에서 지속될 터이다. 우리가 정해진 궤도를 따라 평행하게 나아가는 존재일 뿐이며, 닿을 수 없는 '타'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파생된 흔적은 서로에게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이처럼 득과 실, 이와 해의 구분 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이 우리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곳 어딘가에 실재할 수 있을까. 각각의 것들이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며 상생하는 곳. 서로의 침입에 방비하지 않고 경계를 넘어 맞이하는 곳. 그곳에서는 둘, 혹은 여럿이 이루는 관계들이 깊숙이 점찍어진 채 이어져 또 다른 직선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에 어쩌면 이 관계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두 작가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전시장을 순회하는 이들을 엮는 ‘매개자’라 할 수 있겠다. 서로의 흔적으로서 닮(닳)아가는 사람과 사물, 사물과 공간은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표정으로 익명의 관객들을 맞이한다.

다시, 평행하지만 서로의 범주에 속하고 또 속하는 것들, 불가분의 서사가 계속되는 곳에 대해 떠올려 보자. 짐작건대 그곳은 온종일 해가 지지 않거나 달이 떠 있는 백야, 혹은 극야의 시간이 계속되는 곳일 것만 같다. 끝끝내 맞닿아 있는 것들이 유대를 영속하는 곳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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