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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ild, Weak, Temple»

참여작가 ㅣ김둥지, 류우석, 안진선


챔버 1965

2023.8.3-2023.8.20

        사람의 생만큼 쉽게 스러지는 도시를 보며 최초의 사진을 떠올렸다. 건물과 가로수가 빼곡한 거리에 사람은 온데간데 없다. 긴 노출 시간을 필요로 했던 초기 사진은 짧은 간격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도시를 당시 카메라로 찍는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다. 도시를 이루는 것들의 규모와 속도는 과거와 다르게 흘러간 지 오래다. 빠르게 변하는 이곳에서, 저마다 믿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전시 «Solid, Weak, Temple»은 믿음과 불안 사이에서 진동하며, 견고한듯 보이지만 금세 허물어지기도 하는 도시 풍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공간은 각자의 믿음과 욕망으로 축조된 신전과도 같다. 우리는,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 안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백지장의 사각형 속에서 살고 죽고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또는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 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에서 살고, 죽고, 사랑한다.”1)

안진선과 류우석, 김둥지는 이처럼 불균질한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서로 침범하며 균형을 이루는것들의 생을 다룬다. 챔버1965는 원도심(原都心)의 시간이 깃든 전시장으로, 이들의 조각과 그림이 점유할 수 있는 일시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전시장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안진선의 작업은 일종의 ‘임시-건축’ 상태를 자처한다. 전시라는 매체의 특성이 그러하듯 잠시 축조된 설치는 각진 모서리에 곡선의 조형을 더한다. 지표로부터 부풀어 오른 공간의 감각은 고유의 무게와 질감을 지닌 나무 패널로 덧대어진다. 이때 나무라는 재료가 주는 단단한 질감은 부드럽고 고운 결의 표면으로, 단단히 고정된 듯한 구조는 관객의 발걸음에 흔들리는 미세한 진동으로 옮겨간다. 안진선이 빚어내는 도시의 감각은 이러한 모순과 불안에서 비롯된다. 마침내 땅과 벽에 기생하던 사물은 생동하는 풍경의 일부로 기능한다. 동시에 다른 작품이 놓이는 무대로 자리하면서, 조각-설치-공간의 지위를 뒤섞는다. 

         

          자리바꿈의 지각은 류우석에게 작업의 단초가 된다. 그의 드로잉과 조각은 과거의 전시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전시장에 놓여 있던 마룻바닥 좌대는 작가의 방으로 이동하며,  그것이 놓인 위치뿐 아니라 안팎의 속성을 소실했다. 류우석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변화를 사물의 ‘자세’라 칭하며 그 궤적을 쫓는다. 가령 연필 드로잉 안에서 사물은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사건으로 다뤄진다. 도시를 이루는 구성원과 물리적 환경의 움직임이 일방적이지 않듯, 사물과 공간은 서로의 장력을 바탕으로 균형 잡는다. 좌대와 좌대 위에 놓인 정서영의 조각은 이러한 질서와 “배치들을 규정하는 관계들의 총체”2)를 함축적으로 시각화한다.

 

          김둥지에게 도시는 위태로운 믿음의 구축물이다. 하나의 도시이자 사원으로 상정된 전시장에는 이를 표상하는 제단이 세워진다. 마당의 한쪽과 실내를 차지한 조각은 종교적 도상의 형태를 띤 채 거꾸로 믿음의 실체를 되묻는다. 물음은 믿음의 향방을 보류하고 그것이 발현된 배경을 더듬으며 거울처럼 현실을 비춘다. 조각의 외피는 언뜻 자연에 의해 침식된 돌과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인공적인 단열재 위에 덧칠해진 껍질일 뿐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이미지와 이미지를 떠받드는 물리적 지지체를 분리하고, 부유하는 믿음 아래 실재하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조각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그림은 어떠한 형상도 가리키지 않으며 전복된 믿음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세 작가가 겪은 도시는 모순된 감각과 이를 전제로 한 역설, 끊임없는 자리바꿈과 전복을 꾀하는 유기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그 안에 살면서 스스로를 주름지게 만든다. 규모의 것들이 흘러가는 속도는 비록 상이하겠으나, 이들이 함께 부식될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인식의 외양에 따라, 자리바꿈의 지위를 통해, 믿음의 부피로 생을 연명하는 곳. 우리는 이런 도시에서 살고, 죽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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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푸코, 이상길 역,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pp.12-13.

 

2) 위의 책,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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