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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고 그리는 그림
- 양운 두 번째 개인전 리뷰 

양운
《TWO YELLOW EYE》
2023.2.17-2.26 
 

 

l + l = ll

 

한 곳을 향해 뻗은 선에 또다른 선을 더한다. 나란히 놓인 두 선은 서로에게 일정한 간격을 둔 채 각자의 끝을 향해 평행하게 나아간다. 닿을 수 없이 이어지는 두 선의 궤적은 채워지지 않는 여백을 영영 모른 척 하지 않는다. 안쪽으로 마주본 얼굴은 엇갈리는 시선을 교차하며 두 눈을 맞춘다.

 

 

0 + 0 = 00

 

다시, 마주친 두 눈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눈길의 영역을 천천히 넓힌다. 그렇게 해서 맞닿은 면적은 서로의 손을 기꺼이 잡도록 한다. 다만 이제 앞을 향한 얼굴은 각자의 표정을 획득하고, 오롯이 함께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양효주, 박소운이 ‘양운’이라는 이름으로 연 두 번째 개인전 《TWO YELLOW EYE》(2023.2.17-2.26)는 닿을 듯 닿을 수 없고, 마침내 닿고자 하는 것들의 간격을 더듬은 전시이다. 건물의 세 층을 오고 가며 설치된 노란색의 원(들)은 수많은 얼굴과 표정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따로 또 같이 있는 두 개의 원은 저마다 짝을 이루며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색이 칠해진 면적과 접히고 붙여진 면적, 하얗게 빈 면적이 각기 다른 리듬을 만든다. 둥글고 곧게 뻗어 있는 선을 따라 전시장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정지되어 있는 원의 안팎에서 작은 운동성을 발견하게 된다. 일정한 크기로 고요히 반복되는 운율은 공간에 들어오는 빛의 양에 따라 다른 형태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가시 스펙트럼의 파장 안에서 흰색 다음으로 밝은 색인 노랑은 덧칠해진 밀도에 따라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고 흡수한다. 그러므로 관객이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색이 아닌 빛의 특정한 파장과 굴절이다.

두 눈으로 보는 법 – 거리두기

 

빛을 통해 망막에 맺힌 상은 두 개의 원으로부터 나의 거리, 두 원 사이의 거리를 가늠케 한다. 끝끝내 지름이 맞닿은 원과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원은 그러나 한 시야에 들어올 만큼 가까이 있다. 이때의 ‘가까움’은 거리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데, 여기에는 ‘멀리 있음’이 함께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관계 맺기가 거리를 전제로 하듯, 거리는 ‘너’가 ‘그것’으로 전락하지 않게 해준다. 1) 양운이 두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그것’ 보다 수많은 ‘너’가 있다. ‘너’와의 접촉과 마주봄에는 필연적인 거리가 있어서, 멀어졌다가도 자꾸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하는 관성을 만든다. 두 개의 원에 놓인 거리는 무수한 ‘너’와의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두 눈으로 보는 법 – 마주보고 지탱하기

 

한편 이러한 간극 사이에는 그 틈을 헤아리게 하는 또 다른 지지체가 있다. 양운이 함께 쓰는 지하 작업실의 사물들이다. 전시장으로 올라온 이젤과 사다리, 실과 파이프는 투명한 거리를 가시화하며 제 몫을 견딘다. 두 개의 원은 양운이 함께 보내온 시간만큼이나 닮은 얼굴로, 견고한 사물들을 지지체 삼아 서로를 지탱한다. 이는 다시금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연결되어 있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전시는 사물의 이동 경로와 가쁜 호흡의 결을 따라 지하로부터 옥상까지의 계단을 오르내리게 한다.

 

각자의 무게를 갖고 지탱하는 것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그것이 나름의 규칙과 균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은 이미 두 개의 원으로 대변된 양운의 관계 안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어긋남을 감지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하나를 추구”하는 태도가 작업의 출발점이었다면, 전시는 또 다른 너, 두 개의 눈을 가진 이들과 마주 보고 지탱하기 위한 사건이 되었다. 양운의 전시가 마무리된 지금 그들과 마주보았던 눈으로 글을 쓴다. 비로소 노란 눈(들)이 한데 겹쳐 보인다. 

1) 한병철, 전대호 역, 『사물의 소멸』, 김영사, 2022, pp.84-85.

1층전시전경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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