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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부치는 송시 Odes to Space»

참여작가 ㅣ 고니, 박준형, 정지은


갤러리인

2023.7.14-2023.7.30

               «공간에 부치는 송시 Odes to spaces»는 조형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실재하는 공간 위에 정박하는(anchor) 세 작가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느 방 안에서 시작된다. 방은 사적인 정박지를 구성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간이다. 부유하는 마음과 잔재하는 온기, 형언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감각은 드로잉과 회화로, 사물과 조각으로 각자의 방 안에 구체적인 모양의 닻을 내린다. 이때 수반되는 과정들 – 온도의 색을 채취하고 감정에 부피를 더하는 일, 내밀한 불안을 도상화하는 일 – 은 닫혀 있던 방의 문을 바깥으로 열어젖힌다.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들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한다. 전시는 이렇듯 열린 방공호로서 저마다의 언어를 길어 올린 세 작가의 작업을 ‘공간에 부치는 송시’로 써내려 간다.

 

                 고니는 몸체가 없는 감정들, 주로 상상의 크기를 불리는 외부의 재난과 이로부터 비롯된 불안의 정서를 그린다. 엎질러진 물, 탁자 위에 쌓여가는 컵, 블라인드 사이로 방안을 물들이는 빛은 밤에 극대화되는 기민한 감각을 표상한다. 밤이 깊을 수록 점차 또렷해지는 감각은 시야를 흐리는 어둠에 기인한다. 불 꺼진 방은 밤의 어둠을 미처 내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익은 ‘나의 방'은 여전히 최소한의 평안을 보장한다. 즉 "평안과 불안이 섞인“, “둘 사이에 잠시 유예된(보류된)“ 상황은 방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고니의 작업에서 방은 도상과 도상이 속한 장면의 소실점을 이룬다. 밤의 방을 감싸는 감각은 그 소실점 안에 정박함으로써 형체를 갖는다. 작가는 개인의 신체에 깃들었던 감각을 도상화하고, 흰 종이와 캔버스로 위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다. 이 거리로부터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 확장된다.

 

                 박준형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작은 편지를 여러 개의 평면에 다시 점찍는다. 그는 일정한 간격으로 접혔다 펼쳐진 종이의 자국, 하나뿐인 각도와 모양으로 새겨진 글자 위에서 사물의 시간을 읽는다. 동시에 읽은 것을 다시 써내려 가며 사물에 담긴 타인의 마음과 온기를 복기한다. ‘다시 쓰기’를 위해 종이와 천, 팔레트를 오가며 머뭇거리는 붓은 보낸 이가 ”간신히 기억”하는 마음을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는 접힌 종이의 치수를 재고 물감을 조색하는 등의 노동이 뒤따르는데, 이는 사물의 안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던 시선을 잠시 바깥으로 밀어낸다. 마침내 반복적인 환기를 통해 재현된 편지는 받은 이의 공간 안에서 구체적인 색과 질감으로 기록된다. 방 문에 붙여 두었던 편지를 전시장의 벽으로 옮기면서, 박준형은 사물을 닮은 회화와 회화를 닮은 사물을 상상한다. 둘은 같은 온도와 빛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의 경계를 흐린다.

 

                 정지은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감정의 부산물을 조각한다. 마음 속을 부유하던 감정은 때로는 동그랗고 유연한 몸으로, 때로는 뾰족하고 거친 방식으로 실재하는 공간에 정박한다.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 포기했던 것들, 버티다 떨어져 나간 마음의 파편들은 새롭게 부풀어 오른 유약한 감정과 만나 서로를 지탱한다. 나의 감정을 위로하고 관계를 지속케 하는 것은 결국 또다른 나의 감정인 셈이다. 개별적인 상황에서 파생된 조각들을 하나의 새로운 덩어리로 조합하는 행위는 종이 위에 점-선-면을 새기는 “드로잉적 태도”와도 같다. 실제로 물리적인 공간에 호명되었던 조각은 다시 캔버스의 평면 위에 배치되며 또다른 풍경을 이룬다. 이렇게 무수히 축적된 작업 과정을 통해, 조각과 회화, 단어와 문장, 작품과 전시는 평행한 선 위에서 각자의 정박지를 누빈다.

 

                    전시장 중앙의 테이블에는 기획자와 작가가 함께 읽었던 책에서 각자 발췌한 텍스트가 놓여 있다. 채집된 문장의 행간은 공간을 바라보는 서로의 시선을 엮는다. “공간은 이렇게 오직 단어들, 흰 종이에 적힌 기호들과 함께 시작된다.”1) 조르주 페렉이 그의 저서 『공간의 종류들』에서 기록한 공간 – 페이지,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세계 – 은 여러 편의 글로 귀결된다. 여기서 글쓰기는 시간과 함께 흐르며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지 않은 공간을 얇은 지면 위에 정박시킨다. 세 작가가 줄곧 이어온 ‘그리기’와 ‘만들기’의 행위 또한 페렉의 글쓰기를 닮아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하고, “점점 깊어지는 공허로부터 몇몇 분명한 조각들을 끄집어”내며, “어딘가에 하나의 흠, 하나의 흔적, 하나의 표시, 또는 몇 개의 기호들”을 남긴다.2)

odes_to_spcae.jpg

1) 조르주 페렉, 김호영 역, 『공간의 종류들』, 문학동네, 153쪽.

 

2) 위의 책, 같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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