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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포영(夢幻泡影)
전시 서문


2024.04.24-05.05
유영공간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일체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몽환포영(夢幻泡影)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마땅히 이와 같이 바라볼 지니라


- 금강경(金剛經)의 마지막 사구게 중

 

  지난 꿈을 떠올린다. 눈을 뜨기 전 손에 잡힐 듯 선명하던 꿈은 깨어남과 동시에 지금-여기로부터 멀어진다. 나의 몸 구석 구석에 기입되어 있던 기억은 또 다른 기억에 가 닿기 전 꿈의 형태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꺼지지 않고 뭉근히 지속되는 빛처럼, 꿈은 어제와 오늘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의 어둠에서 끊임없이 명멸한다.

 

  꿈이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의미하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라면, 회화와 조각은 그러한 이미지를 현실에 붙잡아 두기에 적합한 매체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이미지로,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을 촉감을 지닌 사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난 꿈처럼 희미해지는 것들을 반추하면서, 세 명의 작가 – 염기남, 윤수진, 이서경 – 는 그리고 만드는 행위를 지속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만드는 사물의 세계는 현실의 감각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완전히 배제하는 환상과는 다르다. 적어도 세 작가에게 회화와 조각은 현실에 여전히 한 발을 디딘 채 그 위로 부유하는 것들을 향해 뻗어 나가는 무엇이다. 전시 《몽환포영 夢幻泡影》은 우리의 신체와 기억에 맴돌며 잔존하는 감각, 마치 텅 빈 동굴 속 메아리처럼 적막 아래 울려오는 감정을 가시화한다. 이때 ‘몸’은 감각과 감정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된다. 즉 여기서 몸이란 타인에게 비춰지는 대상으로서의 몸보다 내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주체의 몸에 가깝다. 그로부터 비롯된 감각과 감정은 몸이라는 얇은 막을 경계에 두고 바깥으로 드러나거나 안쪽으로 은둔한다. 전시는 이 한정된 영역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들을 교차 시켜 봄으로써 덧없는 것들의 풍경을 그린다.

  염기남의 환상은 특정한 장면의 ‘잔상(after-image)’에서 포착된다. 눈 앞에 자욱한 안개처럼 여러 레이어를 거쳐 남겨진 잔상은 그의 회화 표면에서 저마다의 두께를 가진 물질로 축적된다. 짧은 순간을 동결시킨 뒤 압축한듯 보이는 <차갑고 외로운 물질> 시리즈는 유동적인 액체 상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견고히 하고자 얼려낸 눈의 결정(結晶)같기도 하다. 겹겹의 결정은 각자의 간격을 두고 캔버스 평면 위에 소복이 쌓인다. 이 평면으로부터 시차를 감각할 수 있는 이유는 잔상을 추상화하는 작가의 의식이 서로 다른 층위와 접촉면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낱낱이 목도함으로써, 염기남은 지나간 기억을 회상할 때 남아있는 어렴풋한 감정을 여러 몸을 가진 매체로 확장하며 형상화한다.

 

  염기남이 지나간 잔상을 단단히 하고자 회화를 다룬다면, 이서경은 현재를 감각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흐르는 것들을 그대로 포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거품 섬> 시리즈는 무겁게 누적된 과거로부터 가뿐한 현재로, 이내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로 향하는 감각을 거품 상태의 액체에 비유한다. 기체를 머금고 부푼 액체인 ‘거품’은 뭉쳐서 덩어리지다가도 쉽게 흩어지고 만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을 표현하는 ‘색’인데, 이서경에게 색은 이미 지나왔고 앞으로 지나갈 시간의 증거이자 당시의 온도, 공기, 감정을 상징하는 회화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얗고 파란 빛의 색감은 ‘거품 섬’이라는 허구적인 공간을 그럴듯하게 물들인다. 나아가 실재하는 전시 공간을 빙 둘러싼 캔버스들은 일시적이지만 분명히 감각할 수 있는 풍경을 그려낸다.

 

  윤수진은 복합적인 감정이 야기하는 허구적인 몸의 감각과 반응을 회화와 조각을 통해 탐구해왔다. <숨어버린 인간의 기록>은 타의 것들을 차단한 채 자신을 숨기고자 하는 충동,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중간태를 형상화한 연작이다. ‘숨기’와 ‘드러나기’의 양가적 태도는 흐릿한 그림자와 구체적인 인간 형상의 뒤섞임으로 나타나는 한편 신체를 삼킨 듯 변형된 사물(잔)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여기서 중첩된 이미지와 왜곡된 형태는 아무리 감추고 비워내도 지속되는 감정과 감각의 모순된 속성을 가리킨다. 어떤 껍질과 허울을 갖든, 윤수진의 그림과 조각에서 우리의 생김새를 발견하게 되는 까닭은 그가 은유하는 것이 나와 너 사이, 나와 객체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관계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파생되는 감각과 감정은 몸이라는 제약에서 탈피해 다른 곳, 더 다른 곳으로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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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제목인 ‘몽환포영’은 본래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세 작가가 채집하고 표현하는 감각과 감정, 그것들이 기인하는 몸 역시 덧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회화와 조각이 배양하는 의미는 결국 어딘가에 도달한다. 그곳은 마땅히 그러한 것으로서 필연이 작동하는 곳이다. 짐짓 헛되고 덧없는 것들 사이에서, 필연은 반드시 작동한다. 그곳은 꿈과 환상, 거품과 그림자가 짙은 곳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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