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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파 sound wave» 전시 서문

김대유 이산오 이서경 윤혜진 전지홍 주한별
《음-파》
2023.6.5-6.25
​별관XBGA
 

 

“하지만 우리가 바싹 붙어 앉으면,

(…) 언어의 힘으로 하나로 녹아들어. 안개가 우리를 감싸고, 우리는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내지.

(…) 우리는 발끝으로 걸으며 헤엄치는 사람처럼 가라앉아버릴 거야. 수잔, 우리는 나뭇잎의 초록 대기를 빠져나가 가라앉아. 달리면서 가라앉아. 파도가 우리를 뒤덮고 너도밤나무 잎이 우리 머리 위에서 만나지.” 

 

   넓은 음역대를 가진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함께 목을 가다듬게 되었다. 높고 낮은 울림은 각기 다른 이유로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귓가에 맴도는 진동은 잠시 뿐이므로, 이내 사라지는 것을 쫓듯 소리를 쫓았다. 문득 듣는 일과 기억하는 일이 무척이나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경계를 벗어나 일렁이는 것들에 집중하는 일, 잠시 스치는 것을 내 안으로 흡수하는 일. 《음-파 sound wave》는 이러한 두 행위를 수반하는 전시이다. 여섯 명의 그림과 목소리는 멀리 가라앉았다가도 솟아오르는 호흡을 꿰맨다. 작가가 ‘그리고’ ‘말하는’ 언어는 보고 듣는 이의 심상에 맺힌 뒤 천천히 기운다.

 

가라앉는 힘

  이산오와 윤혜진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 차라리 유약해지기를 택한다. 이산오는 흙과 흑연, 종이라는 부드러운 재료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루만진다. 옅은 연필 선과 깨어지기 쉬운 성질의 도자는 쌓이고 뭉쳐 밑으로 침전한다. 침잠하는 것들 위로 부유하는 언어는 시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건져지는데, 이때 시-그림-도자는 각각 무게의 층위를 점하며 물결 아래 가라앉는다.

  윤혜진은 이미 스러진 것들과 그 이후의 풍경을 그린다. 이를테면 그는 지구에서 올려다본 별자리처럼 수억 년 전 폭발한 빛의 과거를 매만진다. 지나온 길과 땅, 그곳에 속한 생명은 간결한 선과 면적의 잔상으로 남은 채 엷은 색의 붓질로 캔버스 위에 스민다.

  한편 전지홍은 자신이 속했던 땅과 속한 땅, 땅 위에 속한 목소리를 유랑하고 그림으로써 되짚는다. 직접 길을 걸으며 기록한 작업은 작가의 걸음과 시선을 담는다. 순지 위에 쌓아 올려진 먹빛과 세필은 그러한 발걸음과 호흡을 가시화하기에 적합한 재료이다. 잇따라 새겨진 시는 공간에 어린 소리로 다루어진다.

 

솟아오르는 풍경

  말하기 보다 말 걸어 주길 기다리는 풍경들이 있다. 언어화 되기 이전의 풍경과 언어로 채득된 후의 풍경은 회화의 너울 안에서 출렁인다. 김대유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사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그와 마주한 대상은 언어의 모양을 띠기 전 하나의 농밀한 이미지로 안착한다. 줄곧 지나치는 풍경은 1인칭의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귀속된 것으로서 자리 잡는다.

  이서경은 일시적인 감각을 형형하는 빛과 색채로 포착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연속된 이야기의 경계가 자리하는데, 여기서 타오르는 불씨는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이 불씨를 옮기며 빛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빛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깜깜함 속 선명히 빛나던 불씨는 어느새 고유의 표정을 짓는다.

주한별은 주관적인 상상과 보편적인 일상에서 비롯된 감각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문지방, 돌탑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과 대상으로부터 경계와 무게 중심을, 풍경 속 인상 깊은 대상으로부터 선과 공간을 일군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은 화면 위의 무던한 조형언어로 새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바싹 붙어 앉으면,” (…)

풍경과 언어는 애써 가라앉다가도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바싹 붙어 이어가는 호흡은 하나의 전시 안에서 출렁이며 회화를 통해 숨쉬는 방식을 보여준다. ‘음-파’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이미지, 목소리-텍스트는 보고 듣기 위한 유희를 지속케 한다. 그러면 “파도가 우리를 뒤덮”고 “너도밤나무 잎이 우리 머리 위에서 만나”더라도 금새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끝끝내 이어지는 호흡들이 기억하고 듣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 “언어의 힘으로 하나로 녹아들어. 안개가 우리를 감싸고, 우리는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 낼 터이다.

1) 버지니아 울프, 박희진 역, 『파도』, 솔, 2019, pp.19-20.

음-파 포스터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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